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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도에 대해

[해남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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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이 해남도이구요 우측의 큰섬이 대만이라네요




해남도는 대만에 이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인구는 약 6백만 명이다. 또한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큰 경제특구로, 홍콩과 마카오 화교의 많은 투자로 발전한 섬이다.
그러나 여행자가 이곳에 가는 이유는 중국 내륙지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남국의 풍취를
느끼기 위해서다. 중국정부는 아름답고 깨끗한 해변, 풍부한 해산물, 야자열매, 바나나 등 남국
특유의 열매 그리고 여족(黎族)과 묘족(苗族), 장족(壯族) 등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이곳을 동양의 하와이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여름이 길고 겨울은 짧으며 1월 평균기온이 17.2도, 7월 기온이 28.4도로 언제나 따뜻한
이곳은 중국인의 최고 휴양지다. 특히 코코넛이 많이 난다고 해서 '코코넛 아일랜드'라고 불린다.
해남도에는 여러 도시가 있다. 그 중에서 海口는 해남성의 수도로 해남도를 찾는 사람은 비행기로 오든 배로 오든 일단 이 도시를 들르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묵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개 남부의 휴양지로 떠난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도시는 三亞(싼야), 新村(신츈), 通什(통스) 등이다.
해남도는  3차선 고속도로를 자동차로 4시간 이상 달려야 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갈 수 있으므로 섬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작은 나라라고 하겠다.
총 면적이 3만4천제곱킬로미터, 남한의 3분의 1이 넘는 땅이다. 대만 다음 두 번째로 큰 섬이지만 중국 본토에서 보았을 때는 후미진 절해고도, 변방 중에서도 가장 구석에 처박힌
미개하고 보잘것없는 지역이었다. 해남도가 중국 역대 황제들의 관심을 끌었던 유일한 경우
는 정치적으로 견해를 달리하는 신하들의 유배지를 결정할 때였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유배지로서는 다시없이 좋은 곳이었던 것. 유배지가 되면서 해남도는 오히려 문화 수준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를 비롯 이강, 이덕유,
조정, 이광, 호전 등이 유배 생활을 함으로써 수준 높은 유배문화가 꽃피었다. 소동파는 그의 시에서 이 곳을 천애해각(天涯海角)이라고 했다. 하늘 끝이고 바다의 끝이라는 이 말은 유배문학이 만들어낸 해남도의 또 다른 명칭이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밀려나 문명이라고는 없는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땅끝이고 하늘끝에 버려졌다는 절망감에 빠져들었을 만하다.
해변에는 크고 작은 리조트 호텔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고 섬 중앙은 고속도로 공사로 불도저가 언제나 푸르기만 했던 땅을 벌겋게 뒤집어 놓고 있다. 해남도를 찾아오는 관광객은 연간 4백만에 달하는데 이 중 대부분은 중국 본토의 관광객이다.
유배지가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남도는 관광지가 될 만한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열대 기후를 보이는 섬이 해남도다.
이 열대섬은 야자, 바나나를 비롯하여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각종 열대 식물들이 자라고 있고 해변 곳곳에 백설 같은 모래사장들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다 묘족과 리족 등 소수민족의
문화까지 합세해 해남도는 관광매력으로 넘쳐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바다 속에는 스노클링이나 스킨수쿠버를 즐길 수 있는 산호초, 그 산호초 사이를 헤엄치는 형형색색의 열대어들까지 있다. 이모든 것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매개체로 이용한다면 휴양지 해남도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
해남도가 이런 관광 자원을 활용하여 본격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88년부터이다. 88년 이전 해남도는 광동 자방에 편입되어 있었다. 88년 중국에 개방화 열풍이 불어오면서 해남도는 신중국 최초로 성으로 승격이 되면서 경제특구 중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해남도가 해남성이 되자 중국각지의 사람과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의 화교 자본이 유입되면서 해남도는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해남도의 발전 속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도로 풍경이다. 아직 차선도 그려져 있지 않은 넓게 닦인 도로로 벤츠 같은 고급차와 금방이라도 서버릴 것같은 삼륜 오토바이나 경운기들이 통행한다. 이런 혼재된 모습이 바로 해남도의 발전 속도를 가장 잘 드러내 준다. 그만큼 해남도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해남성의 성도인 해구(海口)는 가장 빨리 발달하는 지역임에는 분명하지만 볼거리가 마땅치 않다. 해남도의 관광지는 해구에는 서호, 동호 등 호수가 있는 해구공원, 해남을 중국 땅으로 편입시킨 명나라 장군 해서의 묘, 해남도로 들어온 당 송대의 역사적인 인물들을 기념한 절인 오공사(五公寺) 등이 유명하다. 이것들을 보기 위해 해구 시내로 들어간다면 해남도는 재미없는 여행지가 되고 만다. 바다를 메워 만든 따에 호텔들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해구는 비즈니스 여행지로서 잠시 들러보는 정도가 어울릴 듯하다. 그러나 삼아나 흥륭 지역은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설비가 비교적 잘되어 있고 해변이 있으므로 이 곳을 중심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삼아시(三亞市)에서는 모래사장 위에 기암괴석에 쓰여 있는 천애해각, 1월에도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대동해 해변, 삼아가 보유한 최고의 백사장인 아룡만(亞龍灣) 등이 볼거리다. 삼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녹회두(鹿回頭)공원도 찾아갈 만하다. 녹회두는 뒤를 돌아다보는 사슴 머리라는 뜻인데 묘족 사냥꾼과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이 변하여 사랑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온천수가 풍부해 많은 호텔들이 들어선 흥륭(興隆)에서는 동산령(東山嶺)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로 꼽는다. 동산령은 나해 제1산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명산. 기암괴석의 기이한 배치가 만든 동굴이 유명한데 이 동굴을 따라 산을 오르면 하늘로 오르는 길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 곳은 용왕이 영지초를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와서 산에 오른 용왕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 온다. 용왕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산에 오르자 노한 옥황상제는 바닷물을 산기슭 배 닿는 곳으로부터 바닷물을 빼버렸고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용왕은 흰 독수리로 변했다가 훗날 동산령의 선인의 도움으로 36동을 따라 겨우 바다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야기를 입증이라도 하듯 동산령 8부 능선에는 조음사(潮音寺)가 있다. 조음사란 바다의 소리를 듣는 절이라는 뜻이니 용왕의 염원을 들어준 믿음의 장소가 이니겠는가?
해남도는 소수민족의 나라이다. 중국에는 50여 소수민족이 있는데 해남도에만 36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해남도에서 소수민족이라 함은 묘족(苗族)과 려족(黎族)을 말한다. 이 두 부족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고 있어 이들을 만나는것도 해남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거리다. 려족의 대나무 춤은 흥륭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려족 마을에 가면 볼 수 있다. 려족의 대나무 춤은 태국에서 볼 수 있는 대나무 춤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훬씬 빠른 리듬과 박진감 넘치는 율동이 특색이다. 묘족 마을은 삼아시(三亞市)에서 자동차로 약 한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통십시(通什市)부근에 있다. 묘족은 까만 천에 붉은 색의 무늬가 화려한 옷을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들 묘족이나 려족의 관광객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민속촌에서 외래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거나 공연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연 발생적인 실제 려족 마을을 찾아가려면 비포장 시골길로 한시간 이상 걸을 각오를 해야 한다. 유럽 여행자들은 이런 여행을 좋아해 흥륭의 강락원(康樂園) 리조트에서는 이 마을을 찾아가는 트래킹 프로그램을 개발해 두고 있을 정도다. 흥륭에서 가까운 곳에는 역시 관광용으로 만든 인도네시아 촌이 있다.  이 인도네시아 촌은 인도네시아로부터 이주해 온 화교들이 만든 민속촌으로
역시 공연장이 있고 이 공연장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해남도의 음식은 묘족과 려족의 원주민 음식과 중국 광동 요리가 다채롭게 발달되어 있다. 세계 각국에서 살던 화교들이 해남도로 이주하면서 들여온 각국의 음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의 요리를 해남도에서 맛볼 수 있는 것도 이들 국가에서 살던 화교들이 해남도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해남 요리는 광동 요리의 영향을 받았다. 나뭇잎에 달걀이나 조개를 넣고 끓인 수엽탕(樹葉湯)과 간장에 찍어 먹을 수 있도록 한 오리고기나 돼지고기 등이 단골 메뉴다. 해남도에서는 광동 요리뿐 아니라 사천 요리, 운남 요리 등도 모두 맛볼 수 있는데 이것은 중국 본토에서 해남도가 성으로 승격된 이후 이주자가 많았던 때문이다. 미분(米粉)은 쌀로 마든 가는 면발을 잡채처럼 마든 음식으로 중국 사람들이 주식처럼 먹는다.
또 종자(種子)라는 음식은 수수잎에 수수밥을 싸서 찐 음식으로 말레이시아 쪽의 음식 문화와 닮아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살던 중국인들은 13가지 카레 재료를 이용해 닭도리탕 같은 요리를 만드는데 '카레 치킨' 을 주문하면 먹어볼 수 있다. 또 죽통반(竹筒飯)은 대나무통 속에 밥을 넣고 찐 것으로 려족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려족은 끈기가 있는 쌀을 주식으로 먹는다. 삼아의 오리엔트호텔처럼 해남도의 일부 호텔 식당에서는 김치를 내놓기도 하는데 김치가 세계적인 음식으로 자리잡은 증거라 하겠다. 중국 사람들은 손님을 초대하면 반드시 손님 접시시에 음식을 먼저 담아 주면서 음식에 대한 소개를 해준다. 또 술을 마실 때 손님의 잔에 술이 다떨어지기 전에 술을 따른다. 우리처럼 술잔을 비울 때가지 기다리는 것은 실례로 생각하므로 기회만 있으면 술을 따르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다. 식당에서 웨이트리스가 시중을 들 경우에도 잔이 조금만 비어도 술이 가득 따라 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차이를 두고 중국인들은 한국의 술문화가 공정하다고 말한다. 한국 술 문화는 누가 몇 잔을 마셨는지 알 수 있지만 중국의 술 문화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해구는 물론 흥륭이나 삼아 등 해남도의 도시는 한결같이 나이트 클럽이 잘 발달되어 있다.
호텔과 흥륭의 나이트클럽에서는 스트립쇼도 예사로이 볼 수 있는데 우리 관점으로 위험수위인 장면들이 여과없이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