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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펌] 공돈과 푼돈에 대해서

시장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돈에는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1만원을 내고 선물용 주스 세트를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 돈이 ‘월급’ 통장에서 나온 돈이면 1만원으로 쳐주고, 책갈피에서 찾은 ‘공돈’이라면 5000원의 값어치만 인정해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의 출처에 따라 돈에 갖가지 이름을 붙이고는 마치 서로 다른 돈인 양 차별해서 쓰는 습관이 있다. 특히 공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면 그 돈은 어차피 없었던 돈이라는 프레임이 작용하게 되고 결국 돈을 쉽게 써버리고 만다.
 
다음의 이야기는 공돈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돈이 얼마나 하찮게 여겨지는지, 또 얼마나 쉽게 써버리게 되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한 신혼부부가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기로 하고, 1000달러를 들고 호텔 카지노에 들어갔다. 몇 시간 즐기다 보니 1000달러를 모두 잃고 말았다. 신혼부부는 게임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물론 자신들의 절제력에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신부가 샤워를 하는 동안 신랑은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 때 화장대 위에 놓인 5달러짜리 카지노 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기념품으로 하나 남겨뒀던 칩이었다. 그런데 그 칩 위에 ‘17’이라는 숫자가 마치 홀로그램처럼 비치는 것이 아닌가? 신랑은 좋은 징조라고 여기고 신부 몰래 다시 카지노로 향했다. 5달러를 룰렛 게임의 숫자 ‘17’에다 모두 걸었다. 놀랍게도 공은 17에 들어갔고, 신랑은 35배 배당을 받아 한번에 175달러를 챙겼다. 신랑은 또다시 ‘17’에 걸었고, 이번에는 6125달러를 땄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을 거듭하다 보니 마침내 75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따게 되었다. 신랑은 다시 한번 더 모든 돈을 17에다 걸었다. 그 때 카지노 매니저가 다가와 “현재 현금이 부족하니 여기서 그만두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신랑은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순간 신랑은 행운의 여신이 자기편인지 시험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는 택시를 타고 더 큰 카지노로 향했다. 거기서 다시 17에 모든 돈을 걸었다. 놀랍게도 룰렛 공은 다시 17을 향했고, 신랑은 2억 62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한번 더 시도했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볼은 ‘18’에 떨어졌고, 그는 지금껏 땄던 천문학적인 돈을 한순간에 다 잃고 말았다. 한꺼번에 2억 6200만 달러를 잃고 호텔로 돌아온 신랑에게 신부는 어딜 다녀왔는지 물었고, 신랑은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했노라고 했다. 결과를 묻는 신부의 질문에 신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 괜찮았어. 겨우 5달러밖에 잃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신랑은 처음 가지고 있었던 5달러 외의 돈은 공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들게 번 월급이었으면 결코 도전하지 않았을 무리한 배팅을 했고, 결국 2억 6200만 달러라는 큰돈을 다 잃고도 ‘겨우 5달러밖에 잃지 않았다’고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신랑은 분명 2억 6200달러를 잃은 것이지 자신의 말처럼 5달러만 잃은 것이 결코 아니다.
 
오래 전에 빌려주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돌려받은 돈, 옷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돈, 휴면 계좌에서 발견한 돈, 주운 돈, 보너스, 연말 정산으로 돌려받은 돈 등등. 이런 돈들은 횡재라도 한 듯 짜릿함을 안겨주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이들에게 공돈이라는 이름이 붙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경제생활의 출발은 돈에다 이름을 붙이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나 공돈이라는 이름은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미 공돈이라는 이름이 습관이 되어 있다면 사회심리학자 토머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의 조언대로 해보라.
 
“공돈을 은행에다 2주간만 저축을 해놓아라.”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동안 그 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돈’이라는 이름에서 ‘예금’이라는 이름으로 심리적 돈세탁이 이루어질 것이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당신은 자연스럽게 그 돈을 아끼게 될 것이다.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 중에서>